3회 "의료, 돌봄, 권력을 재조립하기"(2025 돌봄 공론장: 전환과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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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25-07-29 14:34 조회 45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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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돌봄 공론장] 3회차 의료, 돌봄, 권력을 재조립하기가 지난 724일 연세대 의과대 433호에서 열렸습니다. 무더위보다 더 열띤 발표와 질문으로 가득했던 돌봄 공론장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태국의 한 공공병원을 통해 살펴본 의료와 돌봄 이야기를 들려준 서보경 선생님의 발표는 먼저 의료인류학 소개로 시작합니다. 인류학의 갈래 중 하나인 의료인류학은 국제보건의 성장과 함께 발달해왔는데요, “의학은 사회과학이며, 정치학은 단지 거대한 규모의 의학에 지나지 않는다” (Rodulf Virchow, 1848)는 말이 의료인류학의 기본 관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의학은 돌봄 없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라는 질문과 함께 본격적인 강의가 이어집니다.

 

돌봄을 가장 넒은 의미에서 정의한다면, “인간이 가능한 이 세상에서 잘 살 수 있도록 무엇인가를 바로잡고, 지속하고,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하는 모든 활동(조안 트론토)”이 될 것입니다. 돌봄이 특정 영역(대상, 서비스 등)이 아니라 일종의 운영 원리라고 한다면 우리의 생각이 어떻게 바뀔 수 있을까요?

 

Logic of ChoiceLogic of Care: 근대적 개인의 가장 중요한 토대는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병원에서 환자는 의사로부터 제공받는 정보에 기만하여 스스로 합리적으로 선택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치료는 대개의 상품과 달리 완결성을 갖추지 않고, 질병은 예측 불가능한데 말입니다.

 

태국은 보편적 건강보장, 즉 의료비 지출로 인해 더욱 가난해지는 경제적 위험을 겪지 않으면서도 양질의 치료, 재활, 예방, 건강 증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 정책과 제도가 실현되는 국가로 꼽힙니다.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불안정한 태국에서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실제로 건강을 보장해주는 속성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으로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태국에서는 건강보험에 가입한 사람이 본인부담금이 거의 없는 수준으로 공공병원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연구가 진행되었던 병원은 60병상, 의사 7명의 작은 병원이었는데, 이주민 등 다른 곳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이 주로 이 병원을 찾습니다. 모유 수유를 할 수 있도록 산모들에게 입원실을 내어주는 치앙마이의 이 작은 병원에서, 어떤 의료가 좋은 의료인가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됩니다. 첨단시설과 경쟁력있는 의사들이 있는 곳만 좋은 병원일까요?

 

돌봄은 주고받기가 아니라 이끌어내기입니다. 필요에 이끌릴 수 있는, 필요에 응답할 수 있는 능력이 가장 중요한 능력입니다. 치앙마이 병원에서 아기들에게 가장 중요한 자원이 투여된 것처럼 말입니다. 필요에 이끌려,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주는 것, 자격을 따지기보다 필요에 반응하는 것, 이것이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이어야 하고, 그러므로 분배가 가장 중요합니다. 주고받기가 아니라 주고 받고 되돌려주기라는 의무의 거대한 순환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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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의응답: 꼬리에 꼬리를 물었던 질문과 의견을 몇 가지 주제로 묶어서 전해드립니다.

 

* 태국 공공병원 사례에서, 지역과의 관계, 공공성, 재정에 대해 궁금합니다.

- 의료진 양성에 있어서 공공의료기관 배치가 매우 강조되는 곳이 태국입니다. 지역사회의학을 의과대학에서 아주 중요하게 다루고, 졸업 후 시골 병원에 3년간 의무적으로 근무하게 합니다. 지역사회 내 여러 의료자원을 잘 활용하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한 역량으로 강조되기도 합니다. 병원이 지역사회에서 나름의 역사와 위상을 가지고 있고, ‘우리 지역에 좋은 병원이 있으면 좋다는 생각으로 본인이 당장 이용하지 않더라도 병원에 기부하는 마인드가 가능한, 튼튼한 관계가 발견됩니다.

- 태국의 의료보험 재정 운영 방식은 한국과 달리 총액예산제입니다. , 지역 인구에 기반해서 추정한 만큼 예산을 배정받는 식입니다. 대개는 적자가 나는 상황이지만 기본적으로 인건비는 국가가 보장합니다. 병상 개선 등에서 예산 부족 문제가 생길 수 있기는 해도, 병원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 한국은 태국보다 훨씬 더 높은 경제 수준을 갖고 있는 나라인데, 이 부유함을 어떻게 쓰고 있는가가 문제입니다. 한국의 공공병원은 관료제에 포섭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공공기관으로서 지켜야 하는 규칙, 즉 정부가 정한 규칙을 잘 지키기만 하면 공공성을 잘 지키고 있다고 여긴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는 진정한 공공성 실현이라고 볼 수 없죠. 때로 관료적 사고는 돌봄의 가치와 상충될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지나치게 정책 중심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공공병원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일상의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 태국 사례가 한국의 현실에 시사하는 점, 우리에게 필요한 변화는 무엇일까요?

- 태국의 공공병원에도 환자들의 불만은 있습니다. 가장 많은 경우는 오래 기다린다는 것인데요, 그래도 태국에서는 누군가는 마땅히 기다려야 한다는 전제가 가능합니다. 무엇보다도, 기다리는 사람이 자존감을 버리지 않아도 됩니다. 소비자 모델과의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고통받고, 자기 몸을 맘대로 할 수 없는 사람들의 권리가 보장되는 것, 자기가 가진 자원을 내주는 배려가 그것입니다. 수렵채집사회에서는 사냥한 것을 분배할 때, 가족인가 아닌가, 나에게 무엇을 주었는가 같은 조건을 따지지 않고 그냥 달라는 사람에게 나눠주었습니다. ‘마땅히 나눠야할 것을 나눈다는 겁니다. 자격을 따지지 않고 필요에 맞추어 분배하는 원칙이 중요합니다. 이미 이런 원리(소득에 맞춰 기여하지만 필요에 따라 배분)가 사회보험에 작용되고 있음을 고려해보면, 지금 당장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준다는 기준의 분배는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 구체적으로 나의 삶을 변화시키는 정치가 필요합니다. 가장 큰 민중의 요구를 누가 어떤 방식으로 흡수하려고 하는가가 중요하다는 얘기입니다. 한국에서는 정권교체를 이루면서 제기한 모토가 다소 추상적이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꿈꾸는 가치가 지나치게 추상적이지 않은가? 예컨대 고령 노동자 여성의 돌봄 노동의 조건을 바꾸지 않으면서 중산층의 노인, 아이 돌봄만 사회에 요구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가라고 문제제기하고 싶습니다. 가장 관심이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가요?

- 돌봄 계급을 협의가 아니라 광의로 봐야하지 않을까요? 전기, IT, 교통 등의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모두 타인의 필요에 응답하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넓은 의미에서 이들 모두 돌봄 계급입니다. 실제로 세계가 유지되는 데 필수적인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강력한 연대가 이루어진다면 변화는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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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론장에 참여하지 못한 분들은 서보경 지음, 오숙은 옮김 <돌봄이 이끄는 자리> (반비)를 읽어보시면 자세한 이야기를 참고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