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 '페미니스트가 움켜 쥔 노동자 건강권' (20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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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19-10-04 01:02 조회 2,494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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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9일 목요일, 한국여성노동자회가 주최한 “페미노동아카데미 시즌3, 독립생존을 준비하다” 2강 <페미니스트가 움켜 쥔 노동자 건강권> 강의가 있었습니다. 사회건강연구소의 회원인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정진주 위원장님이 강의해 주셨습니다. 성인지관점으로 일터의 환경과 여성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파악하고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지, 변화된 환경이 노동자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닐지 강의 내용을 몇 가지 정리해 보았습니다.
어떤 사회적 위치에 있던지 최고의 건강을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허약하거나 질병이 없는 상태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안녕(well-being)한 상태를 건강으로 보아야 합니다. 안녕한 상태란 몸과 마음이 ‘잘 있는 상태’로 우리 모두는 최상의 건강할 권리를 누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운동, 금연, 금주, 식습관 등을 보건학에서 생활습관이라고 합니다. 생활습관은 보통 자기자신이 만든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노동자의 경우 환경적인 요인이 굉장히 큽니다. 예를 들어 서비스직 여성 노동자들의 흡연율이 굉장히 높은 것은 스트레스가 심하기 때문이고 노동시간이 길어지면 운동할 시간도 기력도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남성이 여성보다 산업재해를 더 많이 신청하고 더 많이 인정받습니다. 단순히 많이 신청했기에 많이 받는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인정률을 보아야 합니다. 가장 높은 인정률을 받는 계층은 남성 정규직 노동자, 가장 낮은 인정률을 받는 계층은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여성이 남성보다 더 건강하고 여성의 일터가 더 쾌적하고 일하기 좋은 것일까요? 비정규직 신분으로 산재 신청을 했다가 해고될까봐 신청을 안할 수도 있고, 산재 신청이라는 제도가 있다는 것조차 몰랐을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과로 인정 체계에서는 휴일이 적고 장시간 일하는 사람들이 인정을 많이 받게 되어 있고 업무환경이 열악한 곳에서 일하는 분들이 인정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로를 인정받는 대부분의 노동자는 남성입니다. 택시기사나 경비원 등 장시간 근로는 주로 남성이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기준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험설계사 여성이 가장 성과가 낮은 팀에 있었습니다. 팀 성과가 올라가려면 증원을 시켜야 하는데, 증원은 해주지 않으면서 계속 성과를 내라는 지침이 들어옵니다. 이 분은 노력하다가 결국 병에 걸려 산재인정을 받으셨습니다. 과로는 노동시간만이 아니라 노동강도도 함께 봐야 하는데, 현재 체계에는 그 부분이 많이 드러나지 않아 보완이 필요합니다.
근골격계질환 중 컴퓨터로 인한 산재는 거의 인정이 안 되고 있습니다. 다만 웹디자이너 같은 강도 높은 일을 하는 분들은 다행이 인정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좀 더 연구가 필요합니다. 또 많은 돌봄노동자들이 근골격계질환을 앓지만 산재인정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최근 들어 보육교사와 시설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의 경우 차츰 산재인정이 되고 있습니다. 서비스노동자들은 감정노동 뿐만 아니라 구두로 인한 무지외반증을 겪고, 꽉 끼는 옷을 입고 오래 서 있느라 하지정맥류가 생깁니다. 근골격계질환은 여성노동자와 뗄 수 없는 문제입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과도한 감정노동은 상당부분 여성노동자의 문제이고, 직장내 괴롭힘도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행하는 경우가 많아 직급이 낮은 여성에게 더 큰 문제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돈이 우선이라는 천박한 자본주의와 권력을 부정의하게 행사하는 직장내 문화 개선이 필요한데 이런 문제에서도 젠더차별은 명확히 존재합니다.
주거환경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연구도 많이 되어 있습니다. 상식선에서도 주거가 불안정하고 열악한 환경이 건강과 관련성이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비혼이 증가하고 있고, 노인집단이 증가하고 있는데 이들의 주거환경은 더 좋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소득층 비혼과 노인층의 다수는 여성이고, 일을 해도 주거환경이 나아질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집중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야 하고 정책 개선이 필요합니다.
낙태죄 폐지가 여성노동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외국의 경우 낙태를 엄격하게 금지할수록 여성들의 사망률이 증가합니다. 자연유산이 될 경우엔 유산/사산휴가를 받을 수 있긴 합니다. 낙태죄 폐지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폐지 이후에도 일하는 여성들은 직장에서 인공임신중절에 대해 어떻게 얘기할 수 있으며, 어떻게 회복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몇 가지 사례를 통해 노동자 건강권을 접근함에 있어서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 문제임을 인식해야 하고, 이를 해결하려는 정책과 법이 필요합니다. 임금/승진/고용형태/조직문화 등을 젠더관점으로 살펴보며 여성노동자에게 주어지는 사회적 인식과 차별도 여성노동자들의 건강권과 연계하여 논의해야 합니다. 한편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과 연대도 필요하지만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서로의 건강을 보살핌 받고 보살펴 줄 수 있는 안전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