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이주농업인 전시회 개최. 10월에 다시 전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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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18-09-02 14:27 조회 2,573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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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하는 그리고 보이지 않는>
사회건강연구소'가 '하자센터'와 '지구인의 정류장'과 함께 하는 전시기획입니다. 이주농업인과 해외입양인 비혼모의 사진과 스토리를 전시함으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사회의 주체로서 힘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사진과 스토리 몇 점 소개합니다. 전시회에는 20명의 사진과 스토리가 있습니다.
전시기간: 2018.8.3(금)~8.31(금) (오전 10시-오후 6시, 월&일요일 휴관)
전시장소: 서울시 영등포구 영신로 200, 하자센터 신관 2층, 허브갤러리
문의: 010-2756-8977
오프닝파티: 8.12(일), 12시-4시
후원: 하자센터, 사회건강연구소, 지구인의 정류장
“당신의 음식은 우리의 눈물로 만들어졌다”라고 외치는 농업이주노동자들이 있습니다. 당신의 매일매일의 식탁을 책임지지만, 아무도 그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귀기울여주지 않습니다. 특히 농업이주노동자의 30%를 차지하는 캄보디아인들이 어떻게 한국으로 오게 되었는지, 땡볕에서 하루 12시간 작업을 해야 하는 노동하는 몸과, 그로 인해 느껴지는 고단한 몸의 고통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국경을 넘나드는 경험을 통해 자신의 삶들을 어떻게 꾸려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해외 입양인 소냐 반덴베르흐가 그리다. 아시아 이주노동자들의 모습, 이야기를 우춘희(사회건강연구소 연구원)가 듣고 기록하다. Sokchae와 Sreyna가 그들의 이야기를 통역하다.”
소냐 반덴베르흐는 네델란드 입양인으로서 한국에 살면서 느낀 점들을 그립니다. 현재, 그녀는 비혼모로서 5살 된 애령을 키우고 있습니다. 입양인의 가정은 다문화가정으로 분류도 되지 않기 때문에, 사회로부터 어떠한 지원도 못 받습니다. 그녀는 사회적 고립감과 외로움을 한국 사회에 울려퍼지게 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전시를 통해서, 그녀가 이 사회에 돌아왔고, 살아가고 있고, 느끼고 있다는 점들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저는 잔타입니다. 저는 충청남도 논산에서 채소재배를 합니다. 2018. 5월 31일, 저는“이주노동자의 빼앗긴 권리를 찾으러 떠나는 투쟁투어버스(투투버스)”를 타고, 다른 이주농업노동자들과 함께 세종시 고용노동부 앞에 갔습니다. 거기서 저는 “근로기준법 99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적절한 숙소에 대한 규정을 구체화하고 엄격한 관리감독을 해야 합니다”라고 한국말, 크메르어(캄보디아어), 영어로 쓰인 푯말을 들고 시위하는데 참여하였습니다. 사실 조금 무서웠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시위를 하고, 지구인의 정류장의 선생님이 있어서 조금 덜 무서웠습니다.
저는 30대 후반으로 나이가 많아서, 사장님들이 저를 고용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 점이 걱정됩니다. 3개월 동안 일이 없으면, 저는 캄보디아로 가야 합니다. 3개월이 되기 바로 전에, 충청남도 논산에 있는 깻잎농장에 고용되어 지금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허리를 굽히고 깻잎을 따야 하기 때문에 어깨와 허리가 아픕니다. 일어서서 돌아다니는 것은 괜찮지만, 쭈그려 앉기만 하면 허리가 저려옵니다.
사장님은 제가 더운 나라에서 왔기 때문에 더운 날씨에 일을 하는 것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캄보디아 사람들이 한국사람들보다 더위에 조금 강할 수는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캄보디아 사람들이 이렇게 불볕더위에서 일을 하는 것이 괜찮다는 뜻은 아닙니다. 제 얼굴은 햇빛과 뜨거운 열기로 인해 빨갛게 달아 올랐습니다. 약국에 가서 약을 샀습니다. 햇빛을 보지 않아야 얼굴이 낫는데, 저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햇빛을 봅니다. 얼굴은 여전히 쓰리고 아픕니다.
저는 캄보디아 깜퐁 참(Kampong Cham)에서 온 다니입니다.
처음에 한국에 오는 것이 많이 두려웠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갔고, 그 사람들에게 “한국에 가니까 어때? 많이 힘들어? 특히 여자가 한국 갔을 때, 더 안 좋은 상황에 놓일까?”라고 물어봤습니다. 사람들이 제게 이렇게 말했어요. “한국 괜찮은 것 같아. 한국의 법들이 잘 지켜지는 것 같아.” 그래서 한국에 오기로 결심했어요.
2013년에 한국에 왔을 때, 충청북도 청주의 비닐하우스에서 토마토, 상추를 땄습니다. 한국에서 제일 힘든 것은 바로 궂은 날씨에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낮 땡볕이 내려쬐는 여름에도 비닐하우스에서 긴팔과 긴바지를 입고 일을 합니다. 비닐하우스 옆쪽 통로이 약간 열려있다고 해도, 바람이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너무 덥습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토마토 순을 따면, 어깨가 많이 아픕니다. 그러면 캄보디아 파스를 붙이기도 합니다. 또한, 겨울은 너무 춥습니다. 캄보디아는 겨울이 없기 때문에 견디기 매우 힘듭니다.
사장님과 같이 일을 하는 것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장이 ‘갑질’을 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제게 ‘갑질’이 무슨 뜻인지 알려주었습니다. 제가 휴일에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오는 것도 사장님이 싫어하고, 마음에 안 들어합니다. “어디가?”라고 매일 물어봐요. 한국사람들은 원래 그런가요? 왜 그래요?
한국에 왔을 때는 20대 후반이었는데, 지금은 30대 초반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결혼생각이 있느냐고 묻는데, 저는 돈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돈이 없으면 결혼도, 아기 낳는 것도 어렵잖아요. 돈 많은 남자랑 결혼하기 보다는, 제가 맘에 드는 남자와 결혼하고 싶습니다. 맘이 착해야 앞으로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캄보디아의 바탐방(KRONG BATTAMBANG)에서 온 소피읍입니다. 시엠립 앙코르 와트에 있는 한 호텔에서 2년 동안 미국 음식을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한국에 일이 있다는 소식을 라디오를 듣고 알게 되었고, 2015년 4월에 한국 왔습니다. 처음에는 경기도 의정부에서 비닐하우스 채소 작물을 키우는 곳에서 일했어요. 오이, 토마토를 길렀습니다. 베트남에서 온 노동자 2명, 캄보디아 노동자 2명과 함께 일했습니다.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쉬지 않고 일을 했어요. 여름에는 정말 덥고, 땀도 많이 흘리고, 금방 지칩니다.
그 다음으로는 경기도 광주에 있는 야채 포장농장에서 일을 했습니다. 포장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덜 힘들고, 덥지 않아요. 거기에서 한국 노동자1명, 한국 남성과 결혼한 캄보디아 여성1명과 같이 일했어요. 캄보디아 노동자들이 더 오랜 시간 동안 일을 하는데도, 한국노동자가 월급을 더 많이 받습니다. 사장님은 정말 이상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일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는데, 저 혼자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너무 외롭고 무서워서 사업장을 바꾸었습니다.
이번에는 경기도 양평에 있는 버섯농장에 갔습니다. 무거운 것을 들고 운반하면서, 허리와 어깨가 계속 아팠습니다. 또, 사장 아들은 저에게 꾸중을 할 때 욕을 섞어서 말합니다. 그 사람은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 천천히 말해주지 않습니다. 기분도 나쁘고,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한국에서 비자가 끝나더라도 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 이후에 캄보디아에 돌아가서 케이크를 만드는 것을 배우고, 케이크 가게를 열고 싶습니다.
한국 봄에 꽃도 피고, 정말 봄이라는 계절은 재미있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