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3일 목요일 저녁, ‘깻잎 투쟁기’ 책을 통해 깻잎 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의 삶을 접했습니다. 이 책은 연구자이자 활동가인 저자께서 직접 깻잎 밭에서 일하며 노동자가 처한 생활환경을 보고 들은 내용을 기술한 것인데요. 이주노동자가 오는 것은 노동력이 오는 것을 넘어 “그들의 삶과 꿈이 함께 온다”는 말로 책을 소개할 수 있겠습니다. 저자 우춘희(메사추세츠대학 사회학과 박사수료) 선생님께서 직접 강의를 맡아주셨습니다.
- 고용 허가제
2004년도부터 현재까지 시행 중인 제도로, 내국인의 인력을 구하지 못한 소규모 기업에서 외국인을 고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고용 허가제를 통해 일하는 사람들은 한국인이 잘 가지 않는 제조업, 건설업, 농축 산업, 어업에 주로 종사하며, 18세에서 39세 사이의 이주 노동자가 최대 4월 10개월까지 일할 수 있도록 합니다. 절차로는 1년에 한 번 있는 한국어 시험에 통과하면, 지원한 사업으로 기능 테스트를 받은 후 건강검진을 받습니다. 마지막으로 인터뷰까지 통과하면 사람에 한하여 2년 이내에 구직 활동에 성공하고 근로계약서를 통해 계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 보파 씨와의 인터뷰
보파 씨가 일하는 봉제 공장에서는 큰 음악이 항상 틀어져 있습니다. 보파 씨의 생각으로는 점심 먹고 졸지 말라고, 옆의 사람과 얘기하는 순간 노동을 하지 않게 되니까 얘기를 하지 말라고 음악을 틀어놓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 콘티에 씨와의 인터뷰
깻잎 밭에서 일하는 콘티에 씨가 설명하는 깻잎 수확은 어렵기만 했습니다. 줄기를 하나 부러뜨릴 때마다 월급에서 1만원 씩 차감되며, 깻잎을 손에 오래 쥐고 있으면 손의 열 때문에 생물이 상하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수확해야 하고 할당량은 하루에 1만 5천 장이나 채워야 합니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했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을 지켜야 하지만 이주노동자를 상대로 이는 잘 지켜지지 않는데, 가장 큰 구조적인 문제로 사업주의 동의가 있어야만 사업장을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사업주가 불합리한 조건을 제시한다 하더라도 문제를 제기하기 힘든 구조입니다. 선주민들이 일했던 시절에는 출퇴근을 사업주가 시켰고, 음식 제공도 했고, 개인적인 스케줄에 따라서 일을 안 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주민 노동자를 고용하면서 이 풍경은 아주 달라졌습니다. 하루에 8시간 일한다고 되어 있지만 사실상 10시간씩 일을 하고 작업시간은 8시간 일하는 것으로 책정되어 월급이 지급됩니다.
- 스레이언 씨와의 인터뷰
캄보디아 출국 전까지도 스레이언 씨는 약 6천만 원의 임금을 받지 못하고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푼돈만 조금씩 받으며 월급을 거의 받지 못했습니다. 사업주의 잘못이 있는 경우 이들의 동의 없이도 사업장을 바꿀 수 있었지만, 이주노동자들은 이러한 정보를 잘 모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 속행 씨의 죽음
열악한 환경에서 거주하는 이주노동자의 죽음으로, 고용노동부에서는 주거시설에 따른 월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숙소 상한액을 정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한액은 곧 기준금액이 되어 상용 주거시설은 1인당 약 33만 원, 임시 주거시설은 약 18만 원을 냅니다.
2016년도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200명 중의 25%가 성폭력 피해자를 겪었고, 가해자의 80%는 한국인이었습니다. 하지만 25명 중 2명만 기관에 요청했는데, 이 이유로는 언어적 장벽도 있지만 ‘혐의없음’으로 결론이 나면 출국 조치가 됩니다. 외국인 노동자 인력 수급 방안은 이들은 인력이고 수급을 맞추기 위한 정책이지만, 결국 이들이 온다는 것은 그들의 삶과 꿈도 같이 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Q1 연구 과정에서의 어려움이나 다른 연구자들이 비슷한 연구를 할 때 새겨들으면 좋을 점을 말씀해 주세요.
A2 2018년도에 지구인의 정류장(임금 체불 문제를 겪는 노동자들의 대부분이 도움을 요청하는 단체) 사람들을 계속 만나왔고, 2019년 여름에 다시 한국에서 정류장 분들을 다시 만났습니다. 보파 씨도 지구인의 정류장에서 임금 체불 문제를 해결했던 노동자의 언니입니다. 한국에 있었을 때 가장 힘들었던 점은 사업주는 만나는 것이었는데, ‘악명높은’ 지구인의 정류장에 자원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밝히면 아예 안 만나주시기도 했습니다. 농촌 사회에서 노동자를 만나려면 사업주의 허락을 맡아야 하기도 했습니다. 또 힘들었던 점은 이주노동자들이 2주에 한 번씩 쉬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이분들이 시간을 내주시기가 아주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Q2 이 연구를 하기 전과 비교해서 실제로 해보니 통계로 보는 것보다 어떤 점들을 더 새롭게 알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A2 인터뷰 과정을 직접 거치지 않고 숫자로만 현상을 파악하려 했다면 제가 알게 된 대부분을 몰랐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하루에 ‘1만 5천 장’을 따는 것이 맞는지 그걸 어떻게 세는지, 숙소가 열악하다고 했는데 어떻게 열악한 것인지를 직접 체험하지 않았다면 어떤 의미인지 파악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Q3 농업이라는 직종이 비슷한 연령대의 여성들에게 어떤 맥락에서 선택하게 되는 걸까요? 더하여 이 여성들이 모여서 연대하고 싸우고 권리를 조금씩이라도 찾아가는 변화는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A3 농업은 근로기준법 제63조에 의해서 휴게시간에 영향을 받지 않는 예외 노동 근로자이기 때문에, 최저임금만 준다면 휴게시간이 없어도 되는 것이죠. 그런데 제조업의 경우 휴게시간과 최대 노동시간을 지켜야 하고, 연장근로 수당 및 휴일 근로 수당도 지급해야 합니다. 그래서 같은 시간을 노동한 경우 제조업의 월급이 더 높기 때문에 제조업이 더 선호됩니다. 그래서 농업은 구조적으로 봤을 때 가장 자원이 없는 사람들이 일하러 가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번째 질문에서는 이주 노동자들이 점점 협상 능력을 갖추게 되는데 이 속에서는 이주 노조가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이 작용합니다. 그런데 이도 주로 남성 제조업 위주입니다. 이주 노동자를 지원하는 NGO도 도시에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농업은 또 상대적으로 적은 사람이 일하기 때문에 사람을 모으기도 힘들고, 이들을 연결할 대중교통도 따로 없는 상황이라서 현장에서는 조직하기가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Q4 캄보디아 공동체 이름이 사마콤인데, 이 공동체가 자리 잡게 되면서 현지에 정보를 많이 제공합니다. 초창기에는 불법 강제 추방을 당한 이주 노동자들이 행동하기 힘들었는데, 이 지형에 변화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산업인력공단에서 최근에 사업주 교육을 하러 갔는데, 편파적으로 수업을 한다고 항의를 듣고 수업에서 잘렸습니다. 여기서 들었던 말이 코로나 이후에 그들이 ‘갑’이 되었다는 주장이었는데, 실제로 보시기에 코로나 이후에 이주 노동자들의 여건이 조금 나아졌는지 궁금합니다.
A4 4년 10개월이라는 제한된 시간 내에 돈을 벌고 나가는 몸으로 훈육되었기 때문에 큰 진전이 있기 어렵습니다. 두 번째 질문에는 사업자도 공단도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마인드가 깊게 깔려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Q5 현장에서 들으신 건강 문제가 어떤 것이 있는지 궁금하고, 생활하실 때 식사를 어떻게 챙기시는지 궁금합니다.
A5 근골격계 질환은 아픈 것도 문제지만 산재로 인정이 안 된다라는 점이 더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손목터널증후군도 자주 호소하는데 젊기 때문에 5년 정도는 크게 치료하지 않아도 문제없다는 사업주의 마인드가 있고, 노동자가 아픔을 호소하면 더 건강한 인력으로 대체하고 싶어 합니다. 설령 병원에 간다고 하더라도 농촌에서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병원을 간다는 것이 어렵고, 반차를 내기도 어렵습니다. 더불어 재생산권, 재생산 건강도 큰 문제이고 피임약을 먹거나 임신 중절 수술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의료 접근성이나 안전하게 임신을 중지할 정보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몸에 직접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치과 쪽 문제도 많이 호소하십니다.
식사 생활은 새벽에 나오기 전에 간단히 먹고, 9시 반쯤 사업주들이 초코파이 같은 간단한 간식을 제공하고, 점심은 비닐하우스 가서 먹고, 3시쯤 간식 사업주가 주고, 퇴근 후에 저녁을 많이 드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