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20. 매일노동뉴스. “환자가 때리면 맞아야 한다고 배웠어요” 보건의료 노동자 감정노동 실태 토론회 열려 … "고충처리기구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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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18-04-25 15:29 조회 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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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노동권익센터와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9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위기에 처한 보건의료산업 감정노동, 그 대안은?’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은영 기자>

“(환자가) 포터블 엑스레이로 검사할 때 아프게 했다며 방사선사 뺨을 때렸어요. 병원에서는 그래도 환자니깐 방사선사에게 사과하라고 했죠. 맞은 방사선사가 사과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해고됐어요. 계약직이었거든요.”(방사선사 A씨)

“환자가 때리면 맞아야 한다고 배웠어요. (환자가) 침을 뱉든 때리든 웃으면서 치료하라고 배웠죠. 그게 당연한 줄 알았어요.”(물리치료사 B씨)

보건의료 노동자들이 감정노동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보건의료 노동자들은 환자가 심신미약 상태라는 이유로 감정노동 피해를 감내한다. 만성 인력부족도 감정노동 원인 중 하나다. 환자를 응대할 시간이 부족할수록 환자와 보호자의 불만은 커져 간다. ‘민원제로’라는 의료기관 경영방침과 모든 책임을 노동자에게 돌리는 관행도 보건의료 노동자를 감정노동의 늪으로 떠민다.

◇보건의료 노동자 “죽을 거 같다” 호소=서울노동권익센터와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9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위기에 처한 보건의료산업 감정노동, 그 대안은?’ 토론회를 열었다. 보건의료노조가 주관한 이날 토론회에서는 보건의료 노동자 감정노동 실태를 다뤘다.

방사선사 C씨는 감정노동에 따른 우울증을 호소했다. “우울해지고 화가 났어요. (결국 스스로) 풀어야 될 문제잖아요. 화장실에서 친구에게 ‘죽을 거 같아’라고 메시지를 보내는 거밖에 할 수 없었어요.”

공선영 사회건강연구소 연구위원이 올해 6월부터 3주간 보건의료 노동자 1천525명을 대상으로 감정노동 실태를 조사했더니 60% 이상이 환자나 보호자로부터 무리한 요구를 받거나 언어적인 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리적 폭력을 경험한 비율은 27.7%, 성추행을 당한 비율은 15.1%였다. 상사와 동료로부터 “욕설이나 폭언 등 언어적인 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한 비율도 20.1%나 됐다.

상황이 이런데도 보건의료 노동자들은 감정노동에 관해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했다. 감정노동 보호제도 시행 여부를 묻는 질문에 “잠시 업무를 중단하고 자리를 피하도록 제도화돼 있다”고 답한 비율은 13.6%에 불과했다. 38.9%는 “(임시업무중지제도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고, 47.5%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감정노동보호제도가 있더라도 67.5%가 “이용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보건의료 노동자들은 폭언·폭행·성희롱·부당대우를 당해도 95.4%가 그냥 참았다. 일부 의료기관은 민원이 제기되면 문제를 조기에 종결하기 위해 보건의료 노동자에게 사과를 강요(23.5%)하거나 시말서를 요구(24.5%)하기도 한다.

방사선사 D씨는 감정노동 피해를 겪고 병원 고충처리위원회에 민원을 접수했지만 재발방지 대책은커녕 가해자 사과도 받지 못했다. D씨는 “(가해자의) 사과를 원했지만 고충처리위원회에서는 재발이 일어나지 않게는 하겠지만 사과는 받을 수 없다고 했다”며 “재발방지책도 말뿐이었다”고 지적했다.

◇“임시업무중지·방어권 보장해야”=보건의료 노동자들은 의료기관에서 발생하는 감정노동 피해를 예방·해결하기 위해 임시업무중지 또는 방어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원무과에서 일하는 E씨는 “전화폭력이 심하다”며 “정당하게 환자를 거부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보건의료 분야 전문가들은 "감정노동 해소를 위한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향수 서울대 교수(여성학협동과정)는 “환자나 보호자의 예민하고 거친 행동을 이해해야 한다는 문화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며 “실적과 친절을 강요하는 병원 조직문화를 개선하고 감정노동 피해대응 매뉴얼과 휴게공간 확보, 감정노동 피해자 심리상담을 통해 피해를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영명 노조 정책기획실장은 “폭언·폭행·성희롱·성폭력사건이 발생하면 즉시 사건을 접수하고 공정하고 신속한 조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병원은 고충처리기구나 전담부서에 피해사실을 접수하고 피해자나 증인을 가해자 보복으로부터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진기숙 의료산업연맹 여성국장은 “병원은 감정노동 피해직원을 보호하지는 못할망정 되레 ‘친절한 태도가 부족하다’며 인사고과에 불리하게 반영한다”며 “병원노동자에 대한 폭언·폭행 등이 상습적으로 일어나는 응급실에서의 의료진 보호조치를 법으로 규정하자”고 제안했다.